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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생활

수돗물 불소농도 조정사업의 안정성

수돗물 불소농도 조정사업(이하 수불사업)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주장에 대한 반론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착각에서 생기는 불안감
그들이 수불사업을 반대하는 첫 번째 이유는 불소가 독극물이라는 데 있다. 순수 불소가 독극물인데 1000만의 8로 희석시키더라도 그 독성이 어디 가겠느냐는 단순한 심정에서 극렬하게 수불사업을 반대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생각은 전혀 잘못된 오해다. 즉, 100% 불소의 성질은 불소를 1000만 분의 8로 희석한 물과 그 성질이 전혀 다름에도 불구하고 같은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 농도가 달라지면 성질도 달라지는 것은 수도 없이 많다. 따라서 수불사업에 대한 불안감은 착각에 기인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다른 예들도 너무 많지만 몇 가지 이들의 자료왜곡과 논리적 왜곡을 살펴보자.

 

산소도 21%는 보약이지만 100%는 치명적
한 가지 비유를 들면 쉽게 알 수 있다. 우리가 공기 중에서 마시는 산소는 우리 몸이 움직이고 활동하는 것을 가능하게 해준다. 그렇지만 그러한 작용이 가능한 것은 산소가 공기 중에 21%만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산소가 뇌나 세포의 작용을 가능하게 한다고 해서 가령 50%가 산소인 공기를 계속 들여 마시고 있으면 우리는 산소중독이 되어 죽는다. 더구나 100% 산소인 공기를 계속 들여 마시면 몇 분내로 죽는다. 즉, 우리의 몸이나 뇌가 산소를 유용하게 활용하는 것은 그것이 공기 중에 21%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산소가 21%인 공기는 우리 몸에 보약이지만 산소비율을 조금만 높여도 우리에게 독약이 된다.

순수한 공기 중에는 보통 아르곤 0.93%, 이산화탄소가 0.03%, 네온, 헬륨, 클립톤, 수소 등도 소량 포함되어 있다. 이들이 보통 공기 중에 극미량 포함되어 있지만 이들의 농도가 높아지면 우리는 질식사를 한다. 즉, 이들이 극미량 공기 중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 인체에 전혀 해가 없던지 때로는 도움이 되지만 그 농도가 높아지면 우리를 죽이게 된다.

위와 같은 예는 100% 산소와 산소 21%인 공기는 그 성질이 아주 다름을 알 수 있다. 즉, 농도가 어느 정도이냐에 따라 사람을 죽이는가 또는 사람에 보약이 되는가가 달라진다. 순수 산소만 마시고 있으면 사람은 죽게될 정도로 순수한 산소자체는 우리에게 독약이 될 수 있지만 산소 21%인 공기는 우리를 생존 가능케 해주는 것이다.


 

불소는 극약이지만 1000만의8(0.8ppm)로 희석시킨 물은 건강수이다

100% 불소는 독극물임이 확실하다. 그렇지만 불소를 1000만 분의 8로 희석시킨 물은 전혀 독극물이 아니다. 100% 불소와 1000만 분의 8로 물에 희석시킨 불소는 그 성질이 전혀 다르다. 100% 불소는 3g만 마셔도 죽지만 불소를 1000만 분의 8로 희석시킨 물은 아무리 마셔도 죽지 않는다. 이 둘을 같은 것으로 다루는 것은 산소가 21%인 공기와 산소가 100%인 공기를 같은 것으로 취급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즉, 보약과 독극물을 같은 것으로 취급하는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다.

또 다른 걱정은 1000만 분의 8로 희석시킨 물을 계속 마시면 불소가 몸에 축적되어 몸에 이상이 생기거나 죽거나 하지 않겠느냐는 걱정이다. 지난 50년 간 불소농도 조정 된 수돗물을 마셨던 수억 명의 사람에게서 부작용이 나타나지 않았는데 앞으로 나타난다고 걱정하는 것은 지나친 걱정이 아닐까? 한국에서도 지난 20년 간 600만 명 이상이 불소농도 조정 된 수돗물을 마셨지만 불소농도 조정 된 수돗물이 인체에 해를 끼쳤다는 예는 단 한번도 없다. 일부에서 뼈에 손상을 입혔다고 주장하지만 근거가 희박한 이야기일 뿐이다.

 


마시고 싶은 사람만 불소를 사서 마셔라?

반대론자들의 마지막 반론은 그렇다면 불소농도 조정 된 물을 마시고 싶은 사람만 불소가 든 생수를 사 마시던지(가령 초청약수 등 우리가 사먹는 여러 종류의 약수에는 1000만 분의 5에서 1000만 분의 15의 불소가 들어가 있다), 아니면 불소화합물을 사서 집에서 물에 타 마시던지 하지 왜 수돗물에 타서 누구나 강제로 마시게 하느냐고 항변한다. 타당한 항변이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원치 않는 사람에게 강제로 투약하는 것이라며 병이 나타나지도 않았는데 미리 인체의 일부분을 제거하는 수술을 모든 사람에 하는 것과 마찬가지 아니냐고 주장한다.

그럴듯해 보이지만 예방의학의 성격을 몰라서 하는 말이다. 이미 병이 나타나면 늦는 경우가 많아 미리 예방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서 뇌염모기가 창궐하면 뇌염모기에 물리지 않은 사람까지도 예방주사를 맞히며 또한 모기를 죽이기 위해 주택가나 주변에 광범위하게 소독을 한다. 누가 반대한다고 해서 소독을 멈출 수는 없다.

그렇다면 이빨 썩는 것이 전염병처럼 심각한 병인가? 그렇지는 않다. 그렇다면 싫어하는 사람까지도 이빨 썩는 것을 막는다며 불소농도 조정 된 수돗물을 먹게 하는 것은 지나친 일이 아닌가? 아주 합리적인 반론이라고 생각된다.

그렇지만 이러한 논리에는 몇 가지 함정이 있다. 우선 거꾸로 생각하면 수불사업을 싫어하는 사람만 불소가 포함되지 않은 생수를 사서 먹으면 안되나? 듣기로는 반대론자들의 상당수는 이미 수돗물을 먹지 않고, 생수를 먹는다고 알고 있다. 모든 집에 수도를 설치하였더라도 이를 싫어하는 사람은 수도를 사용하지 않으면 된다. 그렇지만 대다수에게 수도가 도움이 되기 때문에 집을 지을 때 무조건 설치하게 되는 것이다. 일부가 반대한다고 해서 집을 지을 때 수도를 설치하지 않고 필요한 사람만 알아서 설치하면 사회적 비용이 너무 든다.

즉, 불소농도 조정 된 수돗물은 마신 사람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 즉, 이가 썩지 않고 치과에 가지 않아 생기는 이득이 불소를 투입하는 비용보다 15배에서 40배의 이득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싫어하는 사람이 소수라면 이들이 불소가 없는 생수를 사서 먹는 것이 타당한 것이다. 즉, 집에 전기나 수돗물이 들어오도록 하는 것은 혜택은 많고 싫어하는 사람이 적기 때문에 모든 집을 지을 때 무조건 설치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렇게 단순한 것을 강제진료라고 보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수돗물이 예방적 차원의 조치이지 무엇이 아파서 강제로 하는 것이 아님을 무시하는 거다. 모든 사람에게 이익이 되는 것을 개인적으로 거부하는 것은 좋지만 다른 사람도 하지 말아야 한다며 공포심을 주장하는 것은 지나친 것이 아닌가?

-전북대학교 치과대학 교수 장기완